2008/10/07 01:23

북홀릭 8호 - 사전을 말하다 (2008.10.06)

BookHolic 8호(1006)

 
사전을 말하다

어린 시절 백과사전은 최고의 장난감이었다

내가 초중고 시절을 보냈던 80~90년대는 컴퓨터도, 게임기도 없던 시절이었다. TV 어린이 만화프로그램은 오후 5시에나 시작했다. 긴긴 시간을 때워줄 장난감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시절 10살짜리 남자아이에겐 백과사전이 있었다.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몰랐던 그 아이에게 백과사전은 미국과 아프리카를 동시에 보여줬다. 보도듣도 못한 동물과 식물, 우주의 풍경, 우리 몸의 내부까지 백과사전 하나면 난 못 가는 곳도, 못 보는 것도 없었다. 지금 아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보듯이, 그 시절 10살짜리 남자아이는 백과사전을 통해 세상을 보고 느끼고 배워나갔다.

청년, 영어사전을 손에 쥐다

어느새 20대가 되어 아이 대신 남자가 됐다. 내 손엔 백과사전 대신 영어사전이 있었다. 처음 영어를 배웠던 중학교 시절부터 손에 쥔 영어사전은 20대가 거의 끝나가는 29살이 되고 나서도 버리지 못했다. 차마 버리지 못한 게 아니라 버릴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와 대학 입시, 대학 공부, 취업 전선에 이르는 과정을 영어 사전없이 치러내기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영어사전은 백과사전 못지 않은 다양한 단어를 담고 있지만 한 번도 내게 세상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그건 영어사전 자체의 문제점이라기 보다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영어사전을 바라보았던 내 시선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호기심으로 백과사전을 집었던 순수한 손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전으로 내 생애를 평가한다면 영어사전을 주로 봤던 내 20대는 가장 암울한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30대... 다시 사전을 찾아 헤매다

서른을 넘긴 나이. 어느덧 아저씨가 되어버린 그 남자는 경쟁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영어사전은 버렸다. 그리고 어린 시절 나를 채워준 백과사전을 대신할 사전을 찾아 다시 헤매고 있다. 서른이 넘어도, 아저씨가 되어도 그 놈의 호기심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처럼 호기심을 채워야 할 노력과 수고가 싫어서 적당히 호기심을 묻어둘 줄도 모른다. 나에겐 순수하고도 왕성한 호기심을 해결할 사전이 여전히 필요하다. 그러기에 다시 사전을 찾는다. 다시 한 번 나의 최고의 장난감이 되어줄 그런 사전을 말이다.


*이번주 책 목록


-이 시대 한국의 대표적 문제제기적 지식인 강준만이 만든 교양 사전. 뜻도 모르고, 혹은 알면서도 독자를 현혹하기 위해 오용하는 수많은 개념들을 상세히 설명했다. 역시나 강준만의 자료 수집력은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와 비교할만 하다.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강준만  ---> 바로가기


-미스테리라는 이름으로 지성의 틈새를 노리는 반이성주의를 한방에 날려보내는 책. 그러나 과학적 근본주의의 그림자가 선뜻선뜻 비칠 때면 아찔하기도 하다.
<회의주의자 사전> 로버트 T. 캐롤  ---> 바로가기


-국어사전의 설명이 답답하다면. 이외수 나름대로 단어의 결을 짚어낸 이 책은 독특하면서도 재밌다. 나름대로 그 뜻을 짚은 탓에 작가 개인의 감정과 판단이 너무 많이 개입된 것이 흠이지만, 그 흠이 국어사전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에겐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
<감성사전> 이외수
  --->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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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7 01:22

반이성주의를 거부하라 <회의주의자 사전>


반이성주의를 거부하라

인간은 자신이 매우 합리적이며,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과학의 시대, 합리성의 시대에 살고 있지만 길거리 점집은 여전히 성황이고, TV에선 전생이나 빙의 같은 이른바 초자연적 현상을 다루는데 꺼리낌이 없다.

비과학적인 현상이나 사실을 믿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세상은 과학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믿음과 죽음 이후의 삶을 인정하는 종교적인 믿음, 음모론에 대한 신봉 등이 겹쳐지면서 우리 삶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반이성적이며 신비주의에 휩싸이게 됐다.

<회의주의자 사전>의 지은이 로버트 T. 캐롤은 과학 회의주의자이다. 여기서 회의주의자란 현재까지의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모든 현상, 즉 
대체의학, 외계생물체, 초자연적 현상, 오컬트, 초심리학, 뉴에이지 심령학 그리고 사이비과학 등에 대해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을 뜻한다. 예를 들어

책에서 ‘초능력(EHF)’을 찾아보면 “귀나 이마, 손가락 등 눈을 제외한 신체의 다른 기관으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는 능력(…)눈이 먼 사람들에게 손가락으로 글을 읽도록 가르치는 피부 시각 기술을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점자를 가르치는 쪽이 훨씬 승산이 높을 것이다”로 돼 있다. 물론 해설은 이보다 아주 풍부하게 EHF의 연원과 실태를 설명하며, ‘논리적’이고 ‘실증적’이다. 일반 용어를 풍자적이고 냉소적으로 풀어내 유명한 비어스의 ‘악마의 사전’과 같은 유로 생각하면 오산이다.(2007년 6월 1일 문화일보)

과학 근본주의의 냄새는 아찔하네


<회의주의자 사전>이 신비주의, 오컬트 등의 모든 비과학적인 요소를 남김없이 까발렸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거의 800쪽에 달하는 두툼한 분량 속에 거의 모든 오컬트나 신비주의적 개념들이 모두 들어가있다. 하지만 침술이나 기 치료 등과 같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명쾌하게 해명되지는 않았지만 긴 세월동안 경험적으로 인정받은 개념에 대해서도 비과학적이라고 단정짓는 것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해명하려는 과학 근본주의는 현대 과학이 모든 물리,화학,사회적 현상을 설명할 정도로 발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그 자체가 한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사실과 현상을 회의하고, 진리를 찾아나가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나간다는 점은 이 책의 장점이겠다.

<회의주의자 사전> 로버트 T. 캐롤. 한기찬 역. 잎파랑.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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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17:41

강준만의 자료 수집력에 놀라다<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강준만이 자료에 천착하는 시발점

2004년쯤이었을까. 서점을 돌아다니다 이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곧바로 책을 샀다. 이 책을 산 이유는 제목도 디자인도 아니었다. 순전히 지은이가 강준만이었기 때문이다.

강준만이 교양사전을 썼다고? 지금이야 강준만이 자료 수집과 분석에 천착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지만 당시엔 사뭇 충격적이었다. 혹시나 대한민국의 어떤 성역도 인정하지 않고 실명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던 논객의 모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2005년 1월 오마이뉴스의 신승렬 기자는
"점차적으로 그가 세상과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증세가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 책은 그의 책답지 않게 너무나 얌전하다"고까지 말했을까. 신 기자는 "정치적인, 혹은 논란이 될 분야로 가면 그는 철저하게 2차 자료를 스크랩하는 '가위쟁이'로 자신의 역할을 한정한다"면서 강준만이 "자신이 받은 상처로 인해 그의 최대의 장점을 스스로 포기하는 모습을 본다"고 논평할 정도였다.

강준만은 리영희와 닮았다

강준만은 현재 한국의 대표적 논객이라 할 수 있는 진중권, 박노자, 홍세화, 우석훈 등이 등장할 수 있도록 토대를 닦은 선구자라고 할 수 있다. <김대중 죽이기>로 단숨에 인기를 얻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강준만은 거침없는 실명비판을 앞세워 차츰 그 인기를 넓혀갔다. 그런 강준만이 교양사전이나 쓰고 있는 모습을 보자니 날카로운 그의 비평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실망할 법도 하다.

그러나, 강준만이 그동안 리영희 교수에게 보냈던 찬사를 생각하면 그가 왜 그렇게 자료 수집에 공을 들이는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한겨레 고명섭 기자는 강준만과 리영희에 대해 "철저히 자료를 바탕으로 하는 글쓰기, 쉽게 쓰기, 누구도 따라가지 못할 부지런한 읽기, 도발적인 문제 제기"가 닮았다고 했다. 책 한권, 문장 하나를 쓰기 위해 공을 들였던 리영희 교수를 존경해 마지않는 강준만이기에 교양사전과 같은 책이 나온 것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도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볼 때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은 강준만이 리영희 교수를 닮아가는 과정에 있는 초장기 작품이라고 평가할 만 하다.

더불어 재미도 있다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은 제목에 걸맞게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사상과 이념, 개념, 현상, 사실 등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가족주의와 대중독재론, 근본주의, EU, 공기업, 배아복제, 국정감사, 기업도시, 체험 마케팅 등 종류와 범위도 엄청나다. 특히 일본의 다치바나 다카시에 버금갈 정도의 자료 수집력과 그것을 풀어내는 글빨은 상당하다. 물론 오마이뉴스의 신승렬 기자의 지적처럼 강준만 특유의 실랄한 비판은 찾기 힘들지만, 그의 왕성한 자료 수집력과 글빨이 이를 충분히 만회한다. 교양사전이 충분히 재미있다는 뜻이다. 더불어 시사 문제에 관심이 있는 블로거라면 이 책 한권쯤은 구비해두고, 수시로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한국인을 위한 교양사전> 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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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6 17:26

국어사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감성사전> 이외수

글쓰기의 어려움... 국어사전에 대한 불만...


글이란 참 이상해서,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쉬운 게 아니라 점점 어려워진다. 물론, 글쓰기도 천재만의 소유물은 아니라 훈련을 통해 숙달이 가능하기는 하다. 그러나 적절한 단어나 표현을 한번에 찾아내는 능력은 연습을 해도 숙달이 되는 건 아니다. 그동안 말을 하면서 적절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 우물쭈물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말이 그럴진대 글을 쓸 때 나의 마음을 표현해줄 적절한 단어가 한번에 튀어나오는 현상은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럴 때는 다른 사람이 쓴 책이나 신문기사, 잡지, 국어사전 등을 참고하는데 그것들이 썩 만족스럽기만 한 것도 아니다. 특히나 한국어의 기본이라고 하는 국어사전이 가장 만족스럽지 않다. 예를 들어 '사전'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으면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런 정의는 사전의 뜻을 알기엔 좋을지 몰라도, 사전이란 낱말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뉘앙스를 표현하기엔 부족하다. 사전이란 상상력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가 아니라 차라리 제품의 사용설명서와 더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외수가 바라본 세상, 이외수가 설명한 세상

이외수의 <감성사전>은 그런 점에서 독특하다. 책 제목엔 사전이란 단어가 들어있지만 사전의 그 딱딱한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외수가 <감성사전>에서 가장 먼저 뜻을 풀어놓은 단어는 원고지. 국어사전에 "원고를 쓰기 위해 편리하게 만든 종이"라고 설명된 원고지란 말에 대해 이외수는 "삼라만상이 비치는 종이거울"이라고 정의했다. 그에 따르면 시계는 "하루를 시간별로 스물네 토막씩 절단하는 기계"이며 수면제는 "배고픔은 참을 수 있어도 외로움은 참을 수 없는 사람들이 고통스럽게 일용하는 밤의 양식"이 된다. 또, 절망은 "혼수상태에 빠져 버린 희망"이며 아파트는 "인간 보관용 콘크리트 캐비닛"이 된다. 이렇게 이외수가 풀어놓은 약 250개의 단어는 국어사전의 딱딱한 설명을 벗어나 조금 더 인간적이고, 마음에 다가오는 뜻을 지닌 낱말로 다시 태어난다.

그러나 아쉽다, 많이 아쉽다

<감성사전>을 읽고 있으면 이외수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느낄 수 있다. 원고지를 "삼라만상이 비치는 종이거울"이라고 풀이한 대목에선 글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세상을 글로 잡아두려 하는 어쩔 수 없는 소설가임을 알 수 있다. 시계를 "하루를 스물네토막으로 절단하는 기계"라고 했으니, 그가 현대사회가 강요하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을 강력하게 거부한다는 사실쯤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이 책은 국어사전이 정해놓은 천편일률적인 정의에서 벗어나 단어의 결을 다루고자 하는 시인, 소설가, 만화가, 독서가, 기자, 그리고 블로거들에게 유용하지 않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은 참 많다. 현모양처를 "오직 여자로 태어나야만 성취될 수 있는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덕적 경지"라고 풀어놓은 부분에선 과연 이외수의 사상적 배경이 무엇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여성을 현모양처의 틀에 가두려는 사상도 짜증나지만, 단어를 풀이하는 방법도 밋밋하기 그지 없다. 가끔씩 나오는 밋밋하고 평범한 설명들은 이외수가 이 책을 너무 쉽게 쓴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 책이 처음 나온게 1994년이지만 2008년에 개정판 8쇄가 나올 정도로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런 인기에 걸맞게 이제 좀 더 단어의 결을 살리고, 숨겨져 있는 뉘앙스까지 끄집어낸 새로운 '감성사전'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1994년도의 <감성사전>은 2008년에도 살아남기엔 너무 낡았다.

<감성사전> 이외수. 동숭동.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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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8 09:05

북홀릭 7호 - 내가 반한 한국의 젊은 작가들(2008.09.08)

BookHolic 7호(0908)

 
내가 반한 한국의 젊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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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노트


그동안 일본 소설에 빠져 사느라 한국 소설은 거의 읽지 않았다. 한국 소설보다 일본 소설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순전히 개인 취향문제다. 일본 소설을 편애하는(?) 내 취향이 최근 몇년간 변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앞으로도 최소 몇년간은 한국 소설을 읽을 일이 거의 없을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간간히 읽은 한국 소설들, 꽤 재밌는 작품들이 많았다. 일본 특유의 소설적 재미와는 또다른 재미를 주는 작품들. 특히나 젊은 작가들의 재기발랄함은 일본 소설에서는 절대로 맛볼 수 없는 또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게다가 내가 반한 젊은 작가 중 한명인 박현욱이 쓴 <아내가 결혼했다>는 최근 영화화되어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니 반갑기까지 하다. 한국 영화감독들의 일본 만화 영화화가 은근히 많은 시점이니 말이다.

한때 나에게 한국 소설을 생각하면 데모, 세기말, 염세 등의 단어가 떠올랐다. "세상이 이런데 넌 웃고 즐길 셈이냐" 과도한 심각함에 빠져있던 한국 소설들. 내게는 그런 이지미였다. 하지만 최근에 와서는 한국 소설이 그 암울한 터널을 이미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 최전선엔 젊은 작가들이 있다. 과거와는 달라진 한국소설을 이끄는 젊은 작가들, 그 중에서도 나를 매혹시킨 젊은 작가들이 있어서 고맙다.




 


'폴리아모리'(poliamory)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모르겠다. '다자사랑'이라고 번역되는 이 말은 "동시에 다수의 사랑하는 사람이나 친밀한 관계를 가지기를 원하거나 실천하는 것"(blog.naver.com/polyamorist 참조)을 말한다. 한마디로 한번에 한 사람만을 사랑하다는 전제는 변화 불가능한 성질이 아니란 뜻이다. <아내가 결혼했다>는 폴리아모리를 그린 소설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부일처제를 최고의 덕목으로 치는 사회와 폴리아모리를 추구하는 자의 불협화음을 그린 소설이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일부일처제의 유효기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고 예상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아내가 결혼했다>는 일부일처제 해체의 전주곡은 아닐지 모르겠다...



문학평론가 강유정은 박형서에 대해 "고상함이나 윤리에 시비 거는 ‘쌈마이 정신’(삼류 정신)의 유머"라고 말했다. 박형서의 단편집 <자정의 픽션>에 실린 작품 중 ‘사랑손님과 어머니의 음란성 연구’를 읽고 한 말이다. 쌈마이 정신? 문학가에게 '쌈마이'가 왜 필요하단 말인가? 문학이란 뭔가 고상하고, 지적이며, 인간의 본질을 다룬 뭐 그런 거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박형서에게 문학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소설 중간에 내용과 전혀 상관없이 친구에게 생일 축하 메세지를 날리는가 하면, 주요섭의 단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사실은 달걀을 매개로 한 성애소설이라는 엉뚱한 주장을 근엄한 논문 형식으로 서술한다. 한마디로 웃기는 소설이다 이 말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은지 무려 5년이 지났겄만 아직도 이 소설이 그립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창단한 해가 1980년이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선 무려 2페이지에 걸쳐 설명된 1980년에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를 다 읽어야 한다. 중.고교 시절 소설은 군더더기가 없어야 된다는 명제를 우리는 금과옥조처럼 알고 있지 않았던가. 그러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읽으면서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렇게 유쾌한 소설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기는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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